[헬리오아트 Report no.171] January Week 1

Date
2023-04-12 11:02

 


 


 

no.171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 향년 92세 나이로 지난 1월 5일 별세하였다. 김창렬 작가는 영롱한 물방울을 그린 작품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한국 현대미술에 큰 획을 그었다. 고인의 소속 갤러리였던 뉴욕의 '알민 레쉬(Almine Rech)'는 김 화백의 사망 소식과 함께 추모의 글을 올렸다.


김창열, 회기 SP 10001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은 단색 캔버스에 입체적으로 그려져 마치 작품 밖으로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유도한다. 1970년도 초에 시작된 그의 물방울 작품들은 물방울 한개에서 수십, 수백, 수천개까지 매혹적인 생기를 가지고 캔버스 위에 놓여졌다. 2019년 인터뷰에서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녹여서 '무'의 투명한 상태로 되돌아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분노, 불안, 두려움 등 모든 것을 내려 놓게 하고 평화와 만족을 경험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아'의 향상을추구하지만 나는 자아의 소멸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있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 작가는 열여섯 살에 서양화가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작가는 검정고시로 1948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2년후에 6.25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중단했고, 종전 후 학교에 복학하지 못한 채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60년 이후 김화백은 세계무대로 방향을 돌렸다. 1961년 ‘파리비엔날레’ (‘Paris Biennale’), 19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Sao Paulo Biennale’)에 출품한 뒤에는 스승이었던 김환기 작가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미국 뉴욕에 체류하며 ‘록펠러재단’ (‘Fondation Rockefeller’) 장학금으로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그는 세계적 거장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과 동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비디오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백남준 작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 (‘New York Avant Garde Festival’)에 참가하기도 한다.



김창열, Event of Night, 1972

 

이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김창열 작가는 1970년 파리에서 평생의 동반자 ‘마르틴 질롱’ (‘Martine Jillon’)을 만난다. 그의 평생 화법에 주축이 된 ‘물방울’이 탄생한 것도 이 시기다. 1972년, 파리 근교의 마구간을 빌려 쓰고 있던 아뜰리에서 물을 뿌려둔 캔버스가 물방울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이다. 가난했던 작가는 원래 말라붙은 유화물감을 떼어내서 캔버스를 재활용할 요량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 유화 물감이 아닌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물방울 회화’는 그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 '저녁의 이벤트 ’(‘Event of Night’)라는 물방울 작품을 처음으로 출품한 뒤부터 계속된다. 동양적 정신을 함축한 물방울 작품은 그가 본격적으로 유럽 화단에 데뷔한 뒤 대표작으로 평가받아 고인에게 명성을 안겨 주었고 한국 현대미술에 큰 획을 긋게 했다.

물방울은 시대에 따라 다른 형태로 드러났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는 캔버스가 아닌 마대에, 1980년대 중반부터는 마대에 색과 면을 그려 넣어 동양적 정서를 살렸다. 1990년대에는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화면 전반에 배치한 ‘회귀’ 시리즈가 탄생했고 이는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김창열 작가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1993), 일본 사마모토젠조미술관(1998), 프랑스 쥬드폼므미술관(2004), 중국 국가박물관(2005), 대만 국립대만미술관(2012), 광주시립미술관(2014)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그외 작품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 및 국립현대미술관 등 전세계 주요 미술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 화백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1996년 그리고 2017년 두번에 걸쳐 프랑스 ‘문화 예술 공로 훈장 슈발리에’ (‘Offic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상을 받기도 했다.


김창열 미술관, 제주도

2016년에는 제주도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이곳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작가가 약 1년 6개월 머물러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곳이기도 하다. 마음의 고향인 제주도의 '김창열 미술관'에는 작품 220점이 기증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개관기념 기자 회견을 통해 김창열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타국에 산다는 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항상 정착할 최종 목적지가 있기를 바랬고 제주도는 나를 받아들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한국미술사에 자신을 자리매김한 김창열 작가는 캔버스 위 영롱한 물방울로 '유'에서 '무'를 창조해냈고 지금은 영원한 '무'의 공간으로 향했다. 감사와 함께 평안하시길 추모한다.


[출처] artnew.com